읽다 보면 자극적이거나 강하지 않지만 상사의 장면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소설을 읽을 때가 있다. <초보자를 위한 살인가이드>가 그런 소설 중에 하나다. 첫 장면은 할머니들의 수다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합석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내용도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죽일 것인지, 살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을 교환하는 내용을 유쾌하게 웃음이 넘치는 할머니들의 수다로 듣다 보면 다음 이야기가 저절로 궁금해진다. 상상해 보라! 할머니 3명이 테이블에 앉아서 '목을 따야 한다.' '총보다는 칼이다.'라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이야기하며, 살인 청부업자 섭외와 청부 금액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데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강력한 맛보다는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면서 읽기와 재미가 시작된다.
주인공
그레이스, 대프니, 메그 그리고 니나
메 그: 남편 헨리는 죽었으나, 남편에게 학대 당한 경험이 여전히 남아 환청을 경험한다.
대프니 :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나, 소심한 성격임 아시아 모친과 백인 부친사이에 태어나 인종차별을 받았다.
그레이스: 자메이카 출신으로 런던체서 교사 경험이 있으며,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의 비극을 막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두꺼비 남자 : 어린 여자들을 납치해 악행을 저지르는 악당, 세 할머니가 살인을 결심하게 된 악질이다.
니나 : 고아이며 성매매 악당들에게 납치되어 탈출을 계획하고자 우연히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 소설의 발단이다.
줄거리
메그, 대프니, 그레이스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운동 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세 할머니들은 카페에서 수다로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은 어린 소녀가 카페에 도망쳐 들어와 할머니들에게 숨겨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위험을 직감한 할머니들은 소녀를 숨기고, 뒤 이어 들어온 악당 같은 두꺼비 남자를 따돌린다. 이제부터 평온한 오후의 시간은 끝이 나고 할머니들은 쫓아오는 두꺼비남자를 어떻게 따돌리고 소녀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고 보호하는 과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조용했던 어쩌면 너무 지루했던 일상은 소녀가 카페로 뛰어 들어오는 순간 할머니들의 일상은 급 변화하게 된다. 소녀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각 할머니들의 과거에 경험과 오버랩되면서 그녀들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할머니마다 가져온 후회와 상처들이 그녀들을 나약하게 하고 정체되게 하였지만, 소녀(니나)를 구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힘을 합쳐 큰 용기를 발산하게 된다.
서평
할머니들은 살인을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소설은 메그, 그레이스, 대프니 70대 중반의 세명의 할머니들 살인 가이드(?)이다. 그녀들은 한가롭게 차를 마시면 시간을 보내는 게 익숙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니나라는 어린아이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세 명의 할머니들은 그저 나약한 할머니들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카페에서 유쾌하게 까지 들리던 세 할머니의 살인청부 논의 장면을 읽을 때만 해도 유머스러운 소설인가? 블랙코미디 소설인지 혼란스러웠다. 대화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전혀 청부살인 시도를 하지 못할 거 같은 세명의 할머니 캐릭터들이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세 할머니들은 충분히 살인을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니나를 납치해 성매매를 하는 두꺼비처럼 생긴 악당에게서 니나를 데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니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소심한 할머니들의 살인청부 이유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된다.
모두에게 각자의 전투에서 얻은 상처와 나나를 돕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p 300
메그, 그레이스, 대프니 각 인물들은 우리가 주위에 볼 수 있는 평범하고 힘없는 존재들이다. 지내온 시간들이 많은 만큼 많은 경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른 만큼 약해진 존재들이고 어느새 경험들이 자신들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게 만드는 상처가 내재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모두에게 각자의 전투에서 얻은 상처'라 말한다. 메그의 결혼 생활은 폭력적인 남편 헨리에게서 학대를 당했고, 대프니는 아시아계 엄마와 백인 아빠에게 태어나 인종차별을 겪으며 소심해 졌으며, 그레이스는 자메이카에 자녀를 두고 런던으로 와 교사를 했지만, 학생의 악행을 막을 수 없었다는 죄책감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이고, 더 약하고 소심한 캐릭터들이지만, 무엇이 옮은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경험이 있으며
읽는 동안 나약한 할머니들이 니나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용감해 지고 자신들의 경험과 상처들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또한 힘을 합친다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흔히 협동이라는 것은 각자 좋은 장점만 합쳐야 하고 그래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명의 할머니들의 협동은 작은 존재라도 유용한 가치가 있으며, 각자 가진 상처까지 치유할 수 있는 것이 협동이고 그것이 더 큰 힘이며, 자신을 바꾸는 과정 속에 더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꼭 일흔 중반이라는 나이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짧은 과거에 얽매여 자신을 낮추는 경험이 있거나,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고, 후회라는 단어만 생각하고 지내고 있다면 이 소설 세명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어봤으면 좋겠다. 메그는 남편에게 상처받는 말로 무시당하고 학대를 당했지만, 뒤늦게 남편의 말들이 옳지 않았으며, 아픈 상처지만 뒤돌아 보면서 극복하게 되며, 대프니는 차별받고 소심하며, 외톨이로 지내는 것이 익숙했지만, 타인과 관계를 만들면서 더욱 자신에 대한 용기를 갖게 된다. 그레이스는 지켜주지 못한 제자와 과거의 후회되는 일로 가득해 보이지만, 니나를 구출하는데 누구보다 현명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처한다.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도, 길에 서섯 지도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기 속에서 위협적인 뭔가가 느껴졌다. 거리는 촬영 직전의 뭔가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p136
소설 속에 나오는 장면의 표현이 마치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 마음속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아무도 없고, 혼자 극복해야 하는 무거운 짐만 남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강해 보이지 않아도 주위에 어떤 존재가 있다면, 마음을 열어보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두를 위해 세상을 바꿀 순 없어, 자기. 하지만 한 명의 인생은 바꿀 수 있지." 그레이스가 말했다.
늦었다고 할때, 기회는 늘 곁에 있었고, 대단한 무엇인가를 바꾸려는 부담감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하나의 행동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로 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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